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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성폭력 사건.

쎌리하성 2008. 3. 28. 23:36
 

---다음 아고라에서 펌했습니다. 전에 올려진 글이기도 합니다.

지금 목사들에 의한 성폭행, 간음, 강간이 심각한 수준임을 기독교여신도회

실행위원이란 여자목사가 올린 글을 펌한 것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7&articleId=209071

글쓴이: sadko 번호 209071 2008. 3. 14 조회: 1385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신학적 분석

*정숙자 / 본회 실행위원, 여성교회 목사

 성폭력이라는 언어 속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는 폭력을 사용하여 여성의 성을 빼앗아 남성의 도구로 사용하고 목적 달성 후

여자를 버리거나 죽이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육체적인 폭력 대신 “사랑”을 내세우고 여성의 성을 뺏고 도구화한 후에 그 관계를

미끼로 희생자들을 남자의 수족으로 묶어버리고 나아가서 경제적으로 그 여자에게서 돈을 착취하는 경우이다. 물론 모든 사례가 이 두 가지 경우에 속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 내 성폭력은 거의가 이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 교회 내의 성폭력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은 대부분 목회자들이다.

1997년에 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상담통계에 의하면 성직자, 목사에 의한 강간이나

성추행이 전체 1647건 중 모두 6건이다.

1993년도의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주년 자료집에 의하면 사례 3,000건 중 목회자에

의한 폭력사례가 20건이나 된다. 그 중에서 1991-2년에는 목사들의 성폭력이나

추행 사건이 일간지에 4건이나 보도된 바 있다(한국여신학자협의회 편, ꡔ성폭력과 기독교ꡕ, 여성신학사,

1995. 참조).교회 내의 성폭력의 공통점은 야훼의 사랑이 목사의 사랑과 동일시되어 교인들은 성추행,

성폭행 혹은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희생당한 여성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목사를 통하여 야훼가 자기만 특별히 사랑하신 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재산도 몸도 모두 바쳤다고 한다.  

목사는 그러한 여성들의 맹목적인 신앙을 이용하여 선교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에게 돈을 거두어 들인다.

이것은 여성의 은밀한 곳을 폭행해 놓고 마치 자기는 자비를 베푼 것처럼 행세하고 피해 여성들이

순결이데올로기 때문에 고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 계획한 사기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목사들의 성폭력이 일반사회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교회 내에서 쉬쉬하고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청주 성폭력상담소가 1996. 6. 1.- 97. 5. 31. 사이의 성폭력의 실태를 폭로한 보고에 의하면 가해자 유형을 친인척, 친구, 선배, 직장동료, 직장상사, 애인, 이성친구, 이웃, 교사, 강사, 불량배, 신원불명, 기타로 분류하면서 목회자 또는 성직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피해자들이 목사를 고발 못하는 것인지,  아직 교회 내 성폭력이 일반에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뿐만 아니다. 목사는 자기 행위를 성서적으로 정당화시키고 이러한 행위가 죄와는 관계가

없는 양 교인들과 희생자들을 의식화시키고 있다. 만일 자기의 행위가 발각될 경우에는 그 행위를

성서 속의 인물과 일치시켜서 정당화한다.

 구약성서의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마치 야훼가 허락하신 이야기처럼 해석되어 가르쳐진다.

성서가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남성들이 나누어 갖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며, 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착취당하고 학대하는 존재로 자주 묘사”하고 있다고 말한다(ꡔ성폭력과 기독교ꡕ 참조).

 구약성서 안의 여성을 무시하고 착취하거나 학대하는 인물들이 마치 야훼와 함께 하는 지도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목사들은 이러한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자기자신의 성추행과 성폭행의

지지문서처럼 인용한다. H목사는 자기 교회 젊은 여성들에게 “라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20명의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했다. 이 문제는 이미 1995년도에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9다루었고

본인이 “교회 내의 성폭력과 라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바 있다(ꡔ성폭력과 기독교ꡕ 참조)

  안수기도의 문제

요즘에는 존경과 사랑, 따뜻함과 믿음, 경외와 신뢰를 못 받는 목사들이 사실 더 많다.

그래서 목사들은 이러한 사랑과 믿음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 소위 신령한 경험의 세계를 강조한다.

그 신령한 능력의 소유자로 목사들이 둔갑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방법이 안수기도이다.

 특히 부흥회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수단으로서 안수기도를 한다.  

환자들을 은밀히 치유한다고 해서 골방을 만들고 목사와 환자가 단둘이서만 만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교인들은 부흥사를 통해서 안수기도를 받고 모든 병이 나았다고 믿는다. 사실은 병은

그대로 있어도 심적으로 치유를 경험한 경우가 더 많다.

 목사가 안수를 한다는 것은 마치 그 목사가 야훼의 능력을 받은 목회자이기 때문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목사가 행한 안수기도는 야훼의 능력의 표출이라고 생각하는 교회신도들은 그 목사를 맹신하게 된다.

목사가 자기의 아픈 곳을 알고 있고 안수를 해 준다는 것은 야훼가 나의 아픔을 모두 알아주신다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여자들은 목사 앞에서는 부끄러움이 없어진다. 어떤 곳을 안수 받아도

그 손은 야훼의 손으로 느껴진다.

여자의 음부에까지 손을 대는 목사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이미 여신도들에게는 없다.

이번 사건이 가지고 있는 목사의 행위의 뒷면에 이러한 안수에 따른 문제들이 있었다.

안수라는 야훼의 치유 수단으로 목사와 여신도들 간의 관계는 깊어진 것이다.

여성들은 야훼와의 은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가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목사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여자가

혼전에 남자와 관계를 맺게되면 결혼에 합당한 자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성추행하고 강간한 목사는 강대상에서 아직 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거룩한 분으로 남아있는데,

자기는 십계명을 범한 더러운 죄인으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 개념은 교회 내 독실한

여신도들에게서 더 강하다.

 결국 이 여자는 의지할 곳이 오직 자기를 범한 목사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목사의

또 하나의 목적이다. 그리고 마치 자기가 야훼의 치유자처럼 여자에게 다가가서 성추행과 성폭행을

계속하면서 그 여자에게서 물질을 뺏을 궁리를 한다.

 여자는 이미 자기편이 아무도 없어졌고 오직 목사만이 자기의 편이라고 착각하여 재물도 몸도 마음도

모두 바치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성교육이 문제인 것이 확실하다. 대학교육을 받은 여자의 입에서

이러한 고백을 들어야한다니! 그런데 이러한 무지는 이 여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성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실시되어야 한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신학적 분석 ;정숙자 / 본회 실행위원, 여성교회 목사

목사들의 악행

 목사들은 우선 교세확장을 꿈꾸며 큰 교회를 만들고 그 교회의 왕 같은 존재로 군림하는 것을 꿈꾼다.

교회는 예수의 사업장이며 사업장 확장이 야훼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훼의 사업을 확장시키는 데에 힘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시키는데 가장 알맞은 대상이 여신도들이다.

 여성들을 이용하여 재산을 긁어모으고 교회를 확장시키고 사업을 확장시키려면 어떻게든

그 여신도들로 하여금 목사에게 미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목사의 말이면 하나님의 말처럼 순종하게 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안수방식이 도입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목사는 철저하게 개인 개인을 대상으로 여신도에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여신도들은 자기만이 목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결국 한 교회 내에서 목사가 여러 여신도와 관계를 맺은 경우 반드시 폭로되기 마련인데,

목사들은 그러한 일이 폭로되는 일은 무서워하지 않는 듯싶다.

 일부 목사들은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돈을 긁어모으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큰 교회나

선교센터를 만들어 버리면 그 명성 때문에 여성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것쯤은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보도에까지 나온 사건들의 주인공들이 버젓이 지금도 큰 교회를

시무하면서 떵떵거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결국 폭로했던 여자들만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결과로 남는다.

그래서 여자들은 결국 사실 폭로 보다 사실을 은폐하고 조용하게 살기를 원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여성의 성행위는 사회가 규탄하면서도 남성의 성행위는 마치 자연적인

생리 현상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반응

 이러한 경험을 한 여성들은 교회공동체 안에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러한 희생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사 편에 서서 희생자들을 정죄한다.

 수년전의 H목사 사건 때에도, 이번 사건에서도 그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교인들은 오히려

여자들을 정죄하고 목사 편에 섰다. 오히려 목사를 재판소에 고발한 여자들의 가정을 괴롭혀서

그 재판을 취하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교인들은 고소를 받고 목사가 교인들 앞에서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다는 이유로

목사 편에 섰다. 이런 경우 목사들은 '구약성서의 다윗'을 앞세워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한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까지 죽였지만 야훼 앞에 죄를 고백하고 뉘우쳤기 때문에 야훼가

용서를 하셔서 임금으로서의 임기를 다 마쳤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은 성서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아주 깊다.

무조건 성서의 말씀이면 그 해석이야 어떻든 아멘으로 받아 들인다.

 이러한 교인들 앞에 교묘하게 성서를 앞세우고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야훼의 용서라는 명분으로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그런 사건이 많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신학적 분석 ;정숙자 / 본회 실행위원, 여성교회 목사

 나가는 말

 기독교여성들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피해자도 가족도 그리고 이웃들도 우리의 딸들의 희생을 그대로 묵인하고 덮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러면 다시 같은 희생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만 입다물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다른 희생자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한다. ]

 이번 공청회를 통하여 많은 여성들이 눈을 뜨고 교회 내의 성폭력 추방에 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면서 발제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이미 교계에 도전하는 목사로서 여성교회를 담당하여

약자의 편에서 대변자로 일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결론으로 다음의 ‘목사 바로 알기 10계명’을 내놓는다.

<목사 바로 알기 10계명>

1. 목사도 인간이다. 하나님처럼 믿지 말라.

2. 목사에게도 사적 감정이 있다. 목석이라 생각하지 말라.

3. 목사도 성적 사랑을 느낀다. 박애의 화신으로 착각하지 말라.

4. 남자 목사도 일반 남성과 같은 존재이다.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

5. 남자 목사도 사랑을 위해 결혼한다. 부인과 불화관계에 있는 목사를 조심하라.

6. 남자 목사도 여자 앞에서 성적 흥분을 느낀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상담을 피하라.

7. 교회 담임 목사는 개인 보다 교회를 더 중요시한다. 나만을 총애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8. 교회 담임 목사도 명예와 권위를 추구한다. 만일 피해를 입은 경우 끝까지 싸워라.

9. 교회 담임 목사가 요구하는 물질이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아니다. 물질에 집착한 목사를 조심하라.

10. 여호와의 종은 인간 본성을 억제하면서 교회와 사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다.

 

참된 여호와의 종이 목회 하는 교회를 찾아라.